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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김용언: 경험한 것, 모방한 것, 베낀 것, 파괴한 것

기본 정보
상품명 INTERVIEW 김용언: 경험한 것, 모방한 것, 베낀 것, 파괴한 것
상품요약정보
Kim Yongeon: Experienced, Imitated, Copied, and Destroyed
2023. 6. 1.

인터뷰어: 김형진

상품간략설명 2023. 6. 1.

김용언은 미스터리 전문지 『미스테리아』 편집장이다. 『키노』, 『필름2.0』, 『씨네21』, 『판타스틱』, 「프레시안 북스」 등에서 10여 년간 기자 겸 편집자로 일했다. 『문학소녀: 전혜린, 그리고 읽고 쓰는 여자들을 위한 변호』, 『범죄소설: 그 기원과 매혹』 등을 썼고, 『코난 도일을 읽는 밤』, 『내게는 수많은 실패작들이 있다』, 『죽이는 책』 등을 번역했다.



Q. 책, 영화, 노래에서 접한 문장 중 좋아하는 것 하나를 인용한다면?
A. 가장 최근의 독서 중에서 꼽는다면, 다들 10–20대에 필수 코스로 지나왔다고 하는데 나는 뭉그적거리다가 얼마 전에야 완독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꿈 열흘 밤·마음』(박유하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의 한 구절이다. 죄책감을 다루는 장면이나 구절들을 항상 수집하는데, 이 문장도 수집 상자 속에 넣어두었다.

“나는 과거의 경험 때문에 남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은 당신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당신만은 의심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당신은 의심하기엔 너무 단순한 것 같아요. 나는 죽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까 사람을 믿어보고 죽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단 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되어줄 겁니까? 당신은 진짜로 진지한 겁니까?”



Q. 현재의 문화 지형에서 당신의 관심을 가장 자극하는 사람이나 흐름은?
A. [1] 올해 초 뉴진스의 「ditto」 뮤직비디오가 공개됐을 때, 그 어떤 추억팔이 영상물을 보면서도 경험한 적 없었던 ‘가상의’ 노스탤지어에 압도당한 여진이 아직도 진행 중이다. 시공간과 국적을 가뿐하게 넘나드는 보편성을 획득하기 위해 어디까지 정교하게 계산해야 하는 걸까.

[2]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관람한 뒤 몇 개월째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원작과 팬들의 2차 창작을 번갈아 읽고 있다. 특히 2차 창작에서 ‘원작의 전제와 캐릭터 설정에 대해 여러분 모두 알고 있으니까’라며 곧장 본론으로 돌진하는 전개로부터 느껴지는 안정감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창작물이란 내가 알지 못하는 창작자의 두뇌와 심장 속으로 초대받아 들어가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로부터 수없이 뻗어나오는 2차 창작의 영역, ‘우리 이미 다 아는 세계’라는 약속이 주는 편안함에 다소 중독되어가고 있다. 이 역시 ‘가상의’ 노스탤지어의 영역에 포함되는 걸까.



Q. 최근 구입한 것 중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A. 에렉투스에서 구입한 쿼드모터 모션데스크. 나쁜 자세로 몇 시간씩 앉아서 일할 때 늘 달고 살았던 허리 통증이 확실하게 가셨다. 사무실의 내 책상도 이것이었으면 좋겠다. 하나 더 꼽자면 『슬램덩크』의 캐릭터 윤대협의 피규어다. 살아생전 내가 피규어를 살 거라고는(정확하게는 옆구리 찔러 절 받기로 선물 받은 것이지만)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종이 위에만 표현된 인물을 입체적인 존재로 소유하고 싶다는 열망이 모든 부끄러움과 망설임을 이겼다. 모니터 옆에 세워둔 윤대협 피규어를 물끄러미 쳐다보기만 해도 힘이 솟아난다.

윤대협 피규어.
사진: 김용언

Q. 8년 째 『미스테리아』 만들고 있다. 무슨 생각이 드나.
A. 어릴 때의 나는 언제나 ‘여기 아닌 어딘가’를 원했고, 내가 살아보지 못한 곳의 역사와 분위기를 궁금해 했다. 영화 잡지를 만들 때에도 한국영화의 과거를 다루는 아이템에는 관심이 없었고, 미국/유럽 영화들의 최신 경향만 알고 싶었다. 나를 이루는 것이 전적으로 서구를 향한 내 취향이라고 믿었고, 내 몸은 여기에 있지만 내 머리와 심장은 저 멀리 다른 곳에 더 어울린다고 믿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점은, 점점 주제파악이 잘된다는 것이다. 내가 서 있는 위치가 어딘지 제대로 알아야만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고, 그때부터 나의 과거를, 한국의 과거를 들춰보기 시작했다. 남들보다 언제나 한발 늦는 나는, 그래서 지금 당장의 21세기보다는 20세기 한국이 경험한 것, 모방한 것, 베낀 것, 파괴한 것의 중첩이 더 궁금하다. 그것을 알아야만 내가 쓰고 만드는 것에도 조금 더 풍요로운 지층이 생길 것 같았다. 『미스테리아』 창간호가 출간된 다음 타 매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미스테리아』의 롤 모델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말 뜬금없이 『뿌리깊은 나무』를 적어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물론 철면피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한국 미스터리의 툭툭 끊어지는 울퉁불퉁한 단면에 대한 원고를 꾸준히 청탁하여 『미스테리아』에 게재하는 작업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진 못하더라도 내게는 무척 중요하게 느껴진다.



갑자기 화제 전환을 하자면, 2023년 11월 말에 나올 잡지가 50호다. 50호를 만드는 동안 내 머릿속에 있는 모든 밑천들이 전부 소진됐기 때문에, 언제라도 사람들이 ‘너 맨날 했던 얘기 또 하는 사기꾼 같으니’라고 욕할 것 같아 정말 무섭다. 마침 딱 떨어지는 좋은 숫자다보니, 50호까지 낸 다음 반 년 간 셔터를 내리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싶다. 그래야 부실공사를 하지 않고 다시 차근차근 밟으면서 51호부터의 새로운 터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미스테리아』 7호부터 43호까지.
사진: 유현선

Q. 그동안 수많은 범죄의 상황을 지켜보았을텐데, 본인이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면 어떤 방식으로 실행하고 싶은가.
A.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간극이 크지만, 그래도 가능하다면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까진 아니더라도) 애거사 크리스티의 『커튼』에서와 비슷한 방식을 써먹고 싶다. 『커튼』의 살인자의 원형은 셰익스피어의 『오델로』의 악당 이아고다. 막다른 구석에 몰린 누군가에게, 전혀 어떤 악의가 없는 것처럼 주저하면서, 상대방의 도덕적 경계선을 무너뜨리는 어떤 단어를 아주 부드럽게 건네면서 자극함으로써, 그가 그 ‘명령’을 마치 자신의 의지인 것처럼 받아들여 살인을 저지르게끔 만드는 심리적 조종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그런 암시를 타인에게 가하는 것보단 내가 그 암시에 잡아먹히는 쪽이 더 쉽긴 하다.



김형진은 워크룸과 카우프만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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