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라 크루거는 1987년 『무제(나는 쇼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를 발표했다. 벌써 36년 전이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말이다. 쇼핑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 한동안 사람들은 자본주의 바깥을 상상하기 어렵다며 질식감을 토로했지만 사실 쇼핑이야말로 바깥이 없는, 완벽한 내부의 세계다.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운동을 하려해도 쇼핑은 필요하며, 자연인의 삶을 추구한다해도 쇼핑은 필요하다.

2001년 하버드 디자인 대학원과 렘 쿨하스의 OMA가 함께 기획 출간한 『하버드 디자인 스쿨 쇼핑 가이드』가 탐구하는 건 바로 이런 세계다. 이 책에서 묘사하는 쇼핑의 세계는 흡사 우주처럼 보인다. 그것은 어디에나 있고 매일 반복되며, 무한 팽창한다. 현대 도시 어느 곳도 쇼핑과 무관한 장소는 없다. 공항도 쇼핑몰이고 교회도 마찬가지다. 기차역, 지하철역, 학교, 병원은 물론이고 심지어 군대와 정부도 쇼핑몰처럼 기능한다. 이런 세계가 피곤하고 피상적으로 느껴지는가. 아니, 쇼핑 없는 세계야 말로 공허하고 끔찍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