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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RAP BOOK

양끝 맞춘 그림

기본 정보
상품명 SCRAP BOOK

양끝 맞춘 그림

상품요약정보
Justified Paintings
2023. 8. 22.
상품간략설명 2023. 8. 22.

양끝 맞춤(justified)과 왼끝 맞춤(left-aligned 혹은 ragged right)은 골치 아픈 문제다. 편집 디자이너들은 종종 양끝 맞춤을 아마추어리즘의 해악이라 여기고 (꼼꼼히 손 본) 왼끝 맞춤이야말로 현대주의의 성취라 강변한다. 반면 많은 독자들은 양끝 맞춤만이 가독성을 위한 최선이자 유일한 배열이며 제대로 훈련되지 않은 엉터리 디자이너들이나 왼끝 맞춤을 선호한다고 여긴다. 각자의 믿음은 무척이나 단단해서 이에 대한 언쟁은 늘 좋지 않게 끝나곤 한다.

14세기에 활동했던 프랑스의 필사본 장식가 장 퓌셀(Jean Pucelle, 1300~1355년 경)에게도 문장의 끝을 어떻게 마무리하냐는 큰 문제였다. 1323년에서 1326년 사이 작업한 『벨빌 기도서(The Belleville Breviary)』에서 그는 모든 문장의 끝 부분에 각종 장식을 덧붙여 어떻게든 ‘양끝’을 맞추려 노력한다. 이걸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지만 신이란 언제나 양끝을 맞춰 말하는 존재처럼 느껴질 정도다. 반면 거의 같은 시기인 1324년에서 1328년 사이에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잔느 드브뢰의 시간(The Hours of Jeanne d'Evreux)』에서 장 퓌셀의 노력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용된다. 여전히 문장 뒤로 남겨진 공간을 채워 양끝을 맞추려는 듯 보이지만 그의 관심은 여기에 있지 않다. 『벨빌 기도서』에서 문단 끝에 멈춰섰던 장식들은 정렬된 문단 바깥으로 꿈틀거리며 기어나온다. 온갖 자세의 인간들과 동물들, 상상 속의 생명들은 양끝 맞춰진 문단을 헤집고 흐트러뜨린다. 문장은 끝났지만 나는 아직 남은 말들이 많다는 듯이.

『벨빌 기도서』.

『잔느 드브뢰의 시간』.

사진: metmuseu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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