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졸업』(1967)의 주인공 벤자민 브래독(더스틴 호프만)은 태프트 호텔 라운지에 앉아 하이볼을 마시며 줄담배를 피운다. 로빈슨 부인과의 첫 만남을 위해 그가 고른 옷은 고전적인 블랙앤화이트 헤링본 모직 재킷에 옥스퍼드 버튼 다운 셔츠다. 시어서커를 입기엔 아직 쌀쌀하고 코듀로이를 입기엔 따뜻한 봄날 저녁에 어울리는 착장이다.

청어의 뼈처럼 생긴 무늬라고 해서 이름 붙여진 헤링본은 고대 이탈리아 때부터 바닥 타일이나 장신구 따위에 폭넓게 사용되었고, 특유의 내구성 덕분에 2차세계대전 당시 군용 물품에 적용되기도 했다. 지그재그 모양 때문에 셰브론(chevron) 무늬와 혼동되기도 하지만, 끊김 없이 계속 연결되는 셰브론과 달리 헤링본은 맞닿아 있는 세로줄이 각각 끊어져 있다는 점이 다르다. 벤자민이 입은 헤링본 재킷은 20세기 중반 이후 신사복의 옷장에 새롭게 추가된 품목이다. 이보다 3년 앞선 1964년의 영화 『007-골드핑거』에도 헤링본 재킷이 등장한다. 벤자민이 기다린 건 로빈슨 부인이지만 제임스 본드가 기다리고 있는 건 그를 위해 만들어진 애스턴 마틴의 신형 자동차 DB5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