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종말(The End of Books)’이라는—이제 다소 상투적인 표현이 된—오래된 예언을 제목으로 사용한 표지를 펼치면 책이 끝난 이유와 증거로 가득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일련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바로 알베르토 비첼리와 세바스찬 크레머스가 수집한 약 2,000개의 북엔드(bookend) 이미지다. 일종의 가벼운 말장난이지만 이 책이 말하고 있는 내용은 그리 가볍지 않다.

『책의 종말』은 새로운 관점을 만드는 북엔드의 역할에 관해 이야기한다. 북엔드는 추상적인 형태일때도 있지만 다른 사물의 형태를 빌려오기도 하는데, 해당 사물은 원래의 쓰임새 대신 북엔드라는 새로운 역할을 갖게 된다. 사람들은 대체로 책을 내용이나 형태를 기준으로, 또는 무작위적으로 책장에 정리한다. 하지만 북엔드를 사용하면 앞서 설정한 질서에서 벗어난 규칙을 만들 수 있다. 책장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단위로 다른 기준을 적용해 정리하기 용이하고, 북엔드의 형태와 선별된 책이 어우러져 맥락을 만들기도 한다. 『책의 종말』은 이 상황이 ‘새로운 읽기’ 방식을 제안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세상을 파악하는 새로운 규칙을 만드는 도구로서의 북엔드를 탐구하고 있지만, 그저 다양한 형태의 북엔드를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