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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슬기와 민: 유용한 아마추어

기본 정보
상품명 INTERVIEW 슬기와 민: 유용한 아마추어
상품요약정보
Sulki and Min: Useful Amateurs
2023. 4. 30.

인터뷰어: 김형진

상품간략설명 2023. 4. 30.

슬기와 민(@sulki_and_min)은 서울 근교에서 일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다. 미국 예일 대학교 그래픽 디자인 석사 과정에서 만났고, 네덜란드 마스트리흐트의 얀 반 에이크 미술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다음 2005년 한국에 돌아와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여러 문화 기관과 단체, 개인의 그래픽 아이덴티티, 홍보물, 출판물, 웹사이트 등을 디자인했다. [슬기와 민의 공식 홈페이지(sulki-min.com)에 게재되어 있는 소개글에서 발췌.]



Q. 책, 영화, 노래에서 접한 문장 중 좋아하는 것 하나를 인용한다면?
최슬기. “헬베티카로 사직서를 써 내는 놈이 어디 있어!” 영화 「유 피플」에 나오는 대사다. 조만간 이 문구로 포스터를 하나 만들 생각이다.

최성민. “콴도 파라 무초 미 아모레 데 펠리체 코라손 / 문도 파파라치 미 아모레 치카 페르디 파라솔 / 케스토 오브리가도 탄타 무초 케 캔 이트 잇 카루설(Quando para mucho mi amore de felice corazon / Mundo paparazzi mi amore chica ferdi parasol / Questo obrigado tanta mucho que can eat it carousel).” 비틀스의 노래 「선 킹(Sun King)」 후렴 가사다. 언뜻 스페인어 같지만 아니다. 존 레넌이 대충 스페인어처럼 들리는 단어들과 아무 뜻 없는 소리를 이어붙여 만든 엉터리 문장이다.


「유 피플(You People)」, 2023.

Q. 현재의 문화 지형에서 당신의 관심을 가장 자극하는 사람이나 흐름은?
최슬기. 최근 일각에서나마 동남아시아와 서남아시아 지역의 그래픽 디자인과 예술 출판에 대한 관심이 일고 있는데,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일각’이라 해봐야 어쩌면 최근 『방법으로서의 출판』을 펴낸 미디어버스 정도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 디자인이 최근에 한 작업이어서 기억에 더 남는다. 디자이너 사이에서 서구를 동경하는 시각은 많이 사라졌다고 느끼는데, 이제 우리 주변의 멀고도 가까운 이웃 문화권에 더 관심을 갖고 거기에서 동료를 찾아야 한다.

최성민. 사실 이것도 요즘 하는 일과 관계있는데, 1960–70년대 한국의 이른바 ‘실험 미술’을 재발굴하고 재평가하려는 시도가 매우 반갑다. 정강자, 강국진, 정찬승, 김구림, 이강소, 이건용, 성능경 같은 작가의 선구적인 퍼포먼스나 해프닝, 개념 미술 작업은 지금 봐도 놀랍다. 조만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들의 작업에 관한 대규모 전시회가 열릴 예정인데, 재미있을 것이다.



Q. 최근 구입한 것 중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최슬기. 물건을 살 때 『뉴욕 타임스』의 제품 리뷰 시리즈 「와이어커터」를 종종 찾아본다. 거기서 추천해 산 리펠 접이식 우산이 썩 민족스러웠기 때문이다. 너무 좋아서 가족에게 하나씩 나눠주려고 몇 개 더 샀을 정도다. 조금 무겁지만 튼튼하고 작동이 의심의 여지를 남기지 않으며 확실하다. 오래간만에 느끼는 ’미제(美製)‘의 감각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최근에 산 건 아니다.

최성민. SNS에서 광고에 낚여 사는 물건은 백발백중 실패인데, 예외가 있다. 너무 꼭 닫혀 여간한 악력으로는 열리지 않는 병 뚜껑을 쉽게 열게 해 주는… 집게 같은 물건이다. 이름도 모른다. 두 개에 만 원이었나. 이 물건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요즘은 병 뚜껑을 일부러 무리해서 단단히 닫는다.

Q. 누가 슬기와 민 작업 중 무엇을 제일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그들의 모토”라고 대답한 적이 있다. ‘Clarifying for Business, Obscuring for Pleasure(일은 명료하게, 재미는 모호하게)’라는 모토는 디자이너로서의 슬기와 민과 작가로서의 슬기와 민을 단숨에 이해하게 해준다. 놀라운 것은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 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성민. 글쎄, 태도 자체는 별로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초기에는 우리의 태도나 접근법을 이처럼 명료하게 말로 표현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 모토를 쓰기 시작한 건 2010년대 후반이다. 원래 모순을 좋아한다. 작품도 그렇고 사람의 성격이나 인생도 그렇고, 모순이 묻어야 흥미로워진다. 그런데 이 말이 ‘디자이너’와 ‘작가’의 역할 전환을 암시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두 역할이 뒤섞인 상태를 가리킨다.

‘TUNE’ 브랜드 아이덴티티.

Q. 디스이스네버댓과 ‘TUNE’ 브랜드 아이덴티티 작업을 진행했다. 슬기와 민/패션은 낯익은 조합은 아니지만 동시에 굉장히 자연스러운 관계로 보이기도 한다.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을지 궁금하다.
최슬기. 패션은 재미있는 분야인데 그간 별 인연이 없었다. TUNE은 상품보다는 상점 브랜드에 가깝다. 나이키와 제휴해 특별한 스니커스와 의류를 판매하는 부티크다. 다른 분야 작업에 비해 직관적인 결정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느꼈다. 어떤 시스템이나 내러티브보다 ‘감’이 중요한 것 같았다. 그렇지만 본격 작업에 들어간 다음부터는 별로 낯선 느낌 없이 진행했다.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전용 폰트가 있었는데, 송은 등에서 전용 폰트 작업을 몇 차례 해봤기 때문에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어려웠던 부분은 쇼핑백과 포장용 상자 디자인이었다. 전에는 이런 물건을 디자인해본 적이 없어서 그랬다. 이렇게 말하니 좀 아마추어 같은데, 우리가 그렇다. 유용한 아마추어. 우리의 희망이다.



김형진은 워크룸과 카우프만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사진 제공: 슬기와 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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