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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이혜인: 번역과 반역

기본 정보
상품명 INTERVIEW이혜인: 번역과 반역
상품요약정보
Lee Hyein: Traduttore, traditore
2024. 4. 3.

인터뷰어: 김뉘연

상품간략설명 2024. 4. 3.

이혜인은 번역가이다. 서울과 파리에서 프랑스 문학을 공부했고, 아니 에르노, 엘렌 식수, 샹탈 아케르만의 애도의 글쓰기에 관한 박사 논문을 썼다. 워크룸 문학 총서 ‘제안들’ 32권으로 출간된 엘렌 식수의 『아야이! 문학의 비명』, ‘제안들’ 29권으로 출간될 샹탈 아케르만의 자전적인 글 『브뤼셀의 한 가족』을 한국어로 옮겼다.



Q. 책, 영화, 노래에서 접한 문장 중 좋아하는 것 하나를 인용한다면?
A. “타자의 내면을 존중한다는 것은 밤을 끝내려 하기보다 밤과 결탁하는 것이고, 빛을 어둠의 반대가 아니라 가장 비밀스러운 동맹으로 여기는 것이며, (행동, 생각, 감정에 담긴) 비밀에서 위협과 반대되는 것, 즉 관계의 조건 자체를 보는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안 뒤푸르망텔(Anne Dufourmantelle)의 『비밀 옹호(Défense du secret)』(2015)라는 책에 나온 구절이다. 비밀을 ‘비밀’이라 부를 수 있는 까닭은 비밀이라는 게 나 자신에게도 비밀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투명성과 완벽한 교환에 대한 믿음이 관계의 기본 조건처럼 여겨지는 풍토에서 뒤푸르망텔의 문장은 다른 차원의 울림을 주는 것 같다. 그가 옹호하는 비밀은 말한 뒤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 어쩌면 데리다가 문학에서 봤을 법한 것으로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비밀은 아니다. 서로에게 나눌 수 없는 무엇인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그 밤을 존중한다는 게 꽤 윤리적이고 아름답게 들린다.

안 뒤푸르망텔의 『비밀 옹호』 프랑스어판.

Q. 현재의 문화 지형에서 당신의 관심을 가장 자극하는 사람이나 흐름은?
A. 뱅시안 데프레(Vinciane Despret)에게 관심이 간다. 그는 주로 동물행동학자들의 연구에 관해 연구하는 벨기에 철학자로,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이자벨 스텐게르스(Isabelle Stengers),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바티스트 모리조(Baptiste Morizot) 등과 활발히 교류하며 인간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동물과 함께 사유하는 법을 모색한다. 동물을 실험 대상이나 객체로 보지 않고 능동적인 주체로 바라보길 시도하는데, 『만약… 우리가 제대로 질문하면, 동물들은 뭐라고 할까?(Que diraient les animaux, si… on leur posait les bonnes questions ?)』(2012), 『문어의 자서전(Autobiographie d’un poulpe)』(2021)과 같은 책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그의 연구는 과학과 픽션의 경계를 넘나들며 놀이와 상상력을 적극 활용한다. 데프레는 2021년 파리 퐁피두 센터의 초청 학자로 선정되어 “누구와 함께 오셨나요?”라는 주제로 시인, 아티스트, 연구자 들과 함께 대담, 아틀리에, 전시 등을 기획하며 대중에게도 꽤 친숙한 철학자가 되었다. 그가 들려주는 동물에 관한 이야기에도 관심이 가지만, 픽션과 서사를 십분 활용해 사유를 구축하는 이 (과학) 철학자의 문학적인 연구 방식이 매우 흥미롭다.

뱅시안 데프레의 『만약… 우리가 제대로 질문하면, 동물들은 뭐라고 할까?』 프랑스어판.

Q. 최근 구입한 것 중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A. 프리지어 세 단. 새해 첫날 봉안당에 붙일 꽃을 사러 갔다가 노란 프리지어 한 단을 골랐다. 때 이른 프리지어가 예쁘기도 했지만, 은은하게 퍼지는 향이 어딘가 있을 P에게 가닿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얼마 전, 이제 제철을 맞은 프리지어 두 단을, 아이러니하게도 더 비싼 값을 주고 사 왔다. 선물할 목적이 아니라 그냥 집에 두려고 꽃을 산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화병에 꽂고 보니 계속 눈길이 간다. 인터넷으로 꽃말을 검색해 보니,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이 어쩐지 마음에 든다.

프리지어 두 단.

Q. 당신의 첫 번역서 『아야이! 문학의 비명』은 프랑스 작가 엘렌 식수가 어느 학술 대회에서 ‘문학을 다시 생각하기’라는 주제를 건네받고 쓰게 된 글로, 식수는 이를 “문학이 하는 것은 오로지 스스로 다시 생각하는 것뿐”이라고 재정의하면서 문학과 삶을 해체한 후 그 조각들을 뒤섞어 자신의 방식으로 조합하는 글쓰기를 보여 준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매개는 ‘애도’이며, 이는 당신이 오랜 시간 살핀 주제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애도의 글쓰기를 필요로 하는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러나 애도의 글쓰기가 이를테면 슬픔이라는 감정만을 주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논문을 완성한 지금, ‘애도’와 ‘글쓰기’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A. 글쓰기는 애도를 품는 공간이자 그 자체로 애도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엘렌 식수가 『아야이! 문학의 비명』에서 강조했듯이 문학은 애도를 품고 행한다. 현실에서는 지속되기 힘든 온갖 종류의 비명을 풀어내고 새로 엮고 뒤집고 되살리기를 반복하는 문학적 글은 애도 작업을 이행하면서도 이에 저항하는 하나의 방식이자 방패로서 역할을 하곤 한다. 이 점에서 나는 글쓰기를 ‘치유’나 ‘애도의 완수’로 설명하는 경향과는 거리를 두는 편이다. 물론 프로이트는 「애도와 멜랑콜리」(1917)에서 상실을 대하는 두 반응을 대비시키면서 애도의 완결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어쩌면 프로이트보다 프로이트를 더 충실하고 복잡하게 읽은 후대 연구자들은 애도 작업의 끝에 상실한 대상은 사라지지 않고, 그 모습을 변형한 채 존재한다고 역설한다. 낮에는 라에르테스의 옷감을 짜고 밤에는 풀어헤치기를 거듭하며 오디세우스를 향한 애도를 끝내지 않는 페넬로페의 물레질처럼, 애도하는 글은 이중의 움직임으로 직조되는 것 같다. 또한, 애도는 글쓰기의 소재일 뿐 아니라 글쓰기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글쓰기라는 것이 완성된 사유를 옮기는 게 아니라 사유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라면, 이때 글 쓰는 이는 자기 자신을 포함해 글의 대상과 처음 가졌던 생각을 잊고, 잃고 가까이 가닿기를 되풀이하는—에우리디케를 애도하는—오르페우스와 닮은 듯하다.

엘렌 식수의 『아야이! 문학의 비명』(이혜인 옮김) 한국어판.

Q. 다소 급진적인 견해이겠지만, 번역문학도 넓은 의미에서 한국문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번역가마다 문체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편집자와 번역가의 선택을 통해 이 시점에 이곳에서 번역 출간되었다는 점에서 번역문학과 한국문학이 함께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느끼곤 한다. 무엇보다 결과적으로 ‘한국어로 구사된 문학’이라는 면에서 그렇다. 한국어를 도착어로 삼는 번역가로서 프랑스어 문장을 한국어로 다시 쓸 때,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점은 무엇인가?
A. 제대로 실행에 옮기고 있다고 자신할 수 없지만, 그래도 번역에 앞서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것은 작가의 글에서 들리는 이질감을 지우지 않는 것이다. “좋은 작품은 일종의 외국어로 쓰인다”고 프루스트가 말했던가. 문체를 논하기에 앞서, 작가마다 언어를 듣는 귀와 언어를 다루는 방식이 다른 것 같다. 예를 들어, 엘렌 식수와 샹탈 아케르만은 둘 다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작가이지만 그들의 프랑스어는 아주 다르다. 각 작가의 언어관을 파악하고, 그들이 모국어에 어떤 종류의 변형을 가했는지에 관심을 두려고 노력한다. 어딘가 다르게 들리는 문장의 리듬이나 표현을 지우지 않는 선택은 한국어에도 어느 정도 변형을 가하는 일인데, 그 변형은 언어의 특성상 두 언어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일어날 수 없다. 그래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순간, 번역의 반역은 불가피한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반역이 한국어를 더 유연하고 풍성하게 해 주며 번역을 창작으로 이끌어 주지 않나 한다. 내 번역은 아직 이런 반역에 덜 충실한 것 같다.

샹탈 아케르만의 『브뤼셀의 한 가족』 영어판, 프랑스어판.

김뉘연은 워크룸 프레스와 작업실유령에서 편집자로 일한다. 『모눈 지우개』, 『부분』, 『문서 없는 제목』, 『제3작품집』 등을 썼다.

사진: 이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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