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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정지돈: 오직 죽은 작가만이 좋은 작가다

기본 정보
상품명 INTERVIEW정지돈: 오직 죽은 작가만이 좋은 작가다
상품요약정보
Jung Jidon: Only Dead Writers Are Good Writers
2024. 1. 11.

인터뷰어: 김형진

상품간략설명 2024. 1. 11.

정지돈은 작가다. 2013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통해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내가 싸우듯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 것이다』 『농담을 싫어하는 사람들』 『인생 연구』, 연작소설집 『땅거미 질 때 샌디에이고에서 로스앤젤레스로 운전하며 소형 디지털 녹음기에 구술한, 막연히 LA/운전 시들이라고 생각하는 작품들의 모음』, 중편소설 『작은 겁쟁이 겁쟁이 새로운 파티』 『야간 경비원의 일기』 『…스크롤!』, 장편소설 『모든 것은 영원했다』, 산문집 『문학의 기쁨』(공저), 『영화와 시』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스페이스 (논)픽션』 『우리는 가끔 아름다움의 섬광을 보았다』(공저) 등을 썼다.



Q. 책, 영화, 노래에서 접한 문장 중 좋아하는 것 하나를 인용한다면?
A. “좌회전을 두 번 한다고 해서 우회전이 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세 번 하면 된다.”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펄프헤드』에 나오는 문장이다. 설리번의 설명에 따르면 이 문장은 ‘미남 크리스천 팝 펑크 밴드’ 릴라이언트 K의 앨범 제목(『Two Lefts Don’t Make a Right… but Three Do』)이라고 한다. 『펄프헤드』는 논픽션을 모은 책이지만 거짓말 같은 내용이 가득하다. 릴라이언트 K라는 밴드도 실존하는지 의심스러워 찾아봤는데 진짜 있는 밴드였고 심지어 유명했다. 『좌회전…』 앨범은 2003년 출시됐고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록 가스펠 앨범 후보에 올랐으며 도브 어워드에서 올해의 모던 록 앨범을 수상했다. 도브 어워드는 미국 가스펠 협회에서 주최하는 상이다.

설명을 쓰고 보니 내가 기독교와 관련이라도 있는 사람 같은데 그건 전혀 아니고(나는 신실한 무교다), 단지 저 문장이 의미심장하게 여겨졌을 뿐이다. 내친김에 조금 더 찾아보니 Two Lefts Don’t Make a Right… but Three Do는 자주 쓰이는 영어 표현 two wrongs don’t make a right(“너까지 나쁜 사람이 되지는 마”)를 비튼 말장난이었다. 왼뺨을 맞으면 오른뺨을 내밀어야 하는 크리스천 팝 펑크 밴드가 할 법한 말장난 아닌가? 혹시나 해서 릴라이언트 K의 사진도 찾아봤는데 존 제러마이아 설리번의 설명처럼 ‘미남’인지는 잘 모르겠더라.

릴라이언트 K의 앨범 『Two Lefts Don’t Make a Right… but Three Do』.

Q. 현재의 문화 지형에서 당신의 관심을 가장 자극하는 사람이나 흐름은?
A. 사실 나는 동시대에 별 관심이 없다. 내 관심은 언제나 과거의 사조나 사건, 이미 죽은 사람들을 향해 있다. 오직 죽은 작가만이 좋은 작가다. 굳이 관심 있는 동시대 작가를 말하라고 하면 친구들 정도일까.

죽은 사람 중 최근 가장 좋았던 사람은 슐라미스 파이어스톤과 잔카를로 데 카를로였다.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제2물결 페미니즘의 이론가이며 잔카를로 데 카를로는 건축가다. 카를로의 책을 읽으며 우르비노와 보카 디 마그라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두 곳 모두 책을 읽기 전까지는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곳이다. 우르비노는 카를로가 주로 활동했던 도시고 보카 디 마그라는 휴가를 떠났던 여행지다. 당시 보카 디 마그라에 가면 강을 사이에 두고 파베세와 엘리오 비토리니 같은 이탈리아의 문인과 뒤라스 같은 프랑스의 문인이 휴가를 즐겼다고 한다.

우르비노.

Q. 최근 구입한 것 중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A. 없다. 만족을 느껴본 지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냥 필요한 걸 사서 쓸 뿐. 카우프만의 “이해할 수 없는 트레이”를 사서 친구에게 선물로 줬는데 무척 만족스럽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Q. 인스타그램 계정에 밑줄 그은 책 사진을 자주 올린다. 글쓰기 재료를 모으는 것처럼 보인다. 당신의 방법론으로 알려진 ‘읽고-쓴다’는 아직 유효한가. 이렇게 보는 건 사람들의 게으른 오해일 뿐인가.
A. 대학교에서 이원 시인의 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오한기 소설가도 함께 들었는데 어느 날 이원 시인이 우리를 불러놓고 말했다. 지돈이는 앞으로도 계속 많이 읽어라. 반면에 한기 너는 읽지 마라. 지돈이는 읽는 게 도움이 되고 한기는 안 읽는 게 도움이 된다.

10년도 더 된 일인데 돌이켜보면 이원 시인의 가르침이 거의 맞았던 것 같다. 다시 한번 놀라움과 감사를 드린다. 부연 설명하면, 다만 읽고 쓰는 것을 고정된 프레임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읽고 쓰는 것을 지식을 습득해서 쓰는 행위로, 읽지 않고 쓰는 것을 삶의 경험을 통해 쓰는 행위로 분류하면 오류가 생긴다. 지식과 경험, 쓰기의 층위는 그것보다 훨씬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책을 읽는 것은 간접 경험이고 정보를 얻는 것은 비물질적인 것이라고 여기는데 과연 그럴까. 어떤 경우에 우리는 사람과의 직접적인 만남과 사건을 언어적으로 체험하고 상상하기도 한다. 이때 언어적이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러한 경험의 세부를 따지는 것으로도 한 권의 책이 필요할 것이다. 어찌 됐든 읽기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세상과의 연결 고리다. 읽기가 없다면 살아있다는 감각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것 같다.

Q. 옷 좋아하는 아버지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본인도 옷에 꽤 관심이 많아 보인다. 옷이란 당신에게 무엇인가. 건축에 관한 글을 썼던 것처럼 옷에 대한 글을 써 볼 생각도 있을까?
A. 패션 관련한 칼럼을 연재할 생각이 있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다. 거절했다. 패션 관련한 책을 써볼 생각이 있냐는 제안도 받았다. 역시 거절했다. 옷이라는 게 참, 진지해지면 우스워지고 경시하면 한심해지는 묘한 것 같다. 이상우 소설가가 최근 토크에서 옷을 잘 입는 방법에 대해 질문 받았는데(질문자는 강보원 평론가였다) 이렇게 대답했다. 옷 잘 입는 방법 같은 건 잘 모르겠고, 주변에 옷 잘 입는 사람들을 보면 새 옷은 안 입더라. 심지어 신상을 사서 몇 년 묵혀뒀다가 입는다. 대충 이런 말이었는데, 신상을 사서 시즌이 끝나면 입다니 그게 무슨 돈지랄, 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답이기도 했다. 뉴욕에 이십 년 정도 살았던 외삼촌이 있는데 작년에 내가 뉴욕 여행 간다고 하니까 팁을 하나 알려줬다. 지돈아, 누가 옷 예쁘다고, 어디서 샀냐고 물으면 절대 샀다고 하지 마. 물려받았다고 해. 이건 우리 아버지가 물려준 재킷인데 어쩌고…. 어렵다 패션, 솔직하면 안 되는 곳이구나 이곳, 뭐 그런 생각이 든다.

김형진은 워크룸과 워크룸 프레스, 카우프만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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