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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이은새: 커팅하고 연마하고 직립시키기

기본 정보
상품명 INTERVIEW이은새: 커팅하고 연마하고 직립시키기
상품요약정보
Lee Eunsae: Cutting, Polishing, and Uprighting
2023. 7. 27.

인터뷰어: 김형진

상품간략설명 2023. 7. 27.

이은새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다. 2015년 『틈; 간섭; 목격자』(갤러리 조선)를 시작으로 『밤의 괴물들』(대안공간 루프, 2018), 『As Usual: 늘 마시던 걸로』(갤러리2, 2020), 『디어 마이 헤잍-엔젤-갓』(일민미술관, 2021), 『Night Freaks: Squat』(L21, 마요르카, 스페인) 등의 개인전을 열었다.



Q. 책, 영화, 노래에서 접한 문장 중 좋아하는 것 하나를 인용한다면?
A. 산산산 산산산…
산이여 산이여
산이여 산이여
산은 살아있어요
(반복)

“진지하게 들으면 정신이 안 남아 나겠지.”
“그것보단 미지의 세계의 진정한 변태 같은데.”

—영화 「녹차의 맛」, 2003

Q. 현재의 문화 지형에서 당신의 관심을 가장 자극하는 사람이나 흐름은?
A. 빅시프의 보컬 애드리안 렌커. 작년 11월에 홍대 롤링홀에서 빅시프 내한 공연이 있었다. 그날의 공연에서 「Not」을 부르던 순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다. 연주가 시작되고 보컬이 노래를 시작해야 했지만, 애드리안 렌커는 곡의 첫 구절부터 가사를 떠올리지 못했다. 연주를 멈추고, 다시 시작하기를 몇 번이고 반복했지만, 그녀는 계속해서 가사를 놓쳤다. 힘들게 시작한 노래를 부르던 중에도 그녀는 다시 가사를 잊었고 결국 밴드의 다른 멤버와 관객들의 도움을 받아 노래를 끝내게 되었다. 러닝타임 6분의 음악은 세 번, 네 번을 반복해 가며 결국 13분짜리 곡이 되었다.

한번 흐름을 놓쳤을 때의 찾아오는 아득함에 대해 생각해 보면 나는 그것을 상상하는 것 만으로도 식은땀이 나는데 그런 실패의 순간을, 그리고 그 순간을 어떻게든 채워나가는 과정을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지금도 종종 그날의 애드리안 렌커를 떠올리곤 한다.

빅시프(Big Thief).

Q. 최근 구입한 것 중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A. 최근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1년 이내에 구매한 물건 중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후지필름의 P&S 카메라 클라쎄 S이다. 현재 P&S 필름 카메라들은 더 이상 생산되지 않아 정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나 또한 프리미엄이 붙은 가격으로 사게 되었지만, 현상된 사진들을 볼 때마다 매우 만족하고 있다. 지금은 작업이기보다는 취미로 사진을 찍고 있지만 언젠가는 사진 작업으로 전시를 해보고 싶다.

후지 필름의 P&S 카메라 클라쎄 S.

Q. 2020년 개인전 『As Usual: 늘 마시던 걸로』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다름 아닌 제목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다이너나 바에 들어서면서 “늘 마시던 걸로”라고 말하는 태도와 분위기에 늘 감탄하곤 했었기 때문이다. 그 장면들만 잘라 모아 ‘늘 마시던 걸로’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도 생각했을 정도로. 당신에게 ‘늘 마시던 걸로’라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가. 있다면 그 ‘늘 마시던’ 건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A. 나 또한 매체에서만 보던 그 표현에 흥미를 느껴 짓게 된 제목이다. 개인전 『As Usual: 늘 마시던 걸로』는 이 너무도 익숙한 어구를 나에게 적용했을 때, 바텐더가 과연 내게 무엇을 내어줄지, 그리고 기존에 쌓아온 습관이 내가 진짜 원하는 거였는지 등을 떠올리며 내가 쌓아온 회화의 방식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방법론적 탐색을 하는 전시였다. 기존의 작업의 방식에서 벗어나 방법론적인 연구를 시도하며 일상적 소재를 반복적으로 그려보는 과정을 통해 관성적 표현들, 태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다.

어쨌든 실제 생활에서 “늘 마시는 걸로”라고 말할 수 있는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아쉽게도 자주 가던 공간들은 이제는 세대교체가 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곳이 많다. 또한 최근에는 집과 작업실만 오가는 매우 단순한 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럴만한 곳이 전혀 없다. 그래도 작업실 근처 식당에 가서 이 말을 한다면 제육 덮밥을 주시지 않을까.

Q. 2021년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디어 마이 헤잍–엔젤–갓』을 준비하면서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하다. 1층 이은새, 2층 홍승혜, 3층 윤석남, 말 그대로 선배들을 층층시하로 모신 전시였는데. 하나 더 물어보고 싶은데, 「뒤집은 채로 감자칩 먹는 여자」 작품은 팔렸나. 안팔렸다면 언젠가 카우프만 소장품 목록에 넣어 두고 싶다.
A. 『디어 마이 헤잍-엔젤-갓』에서는 현실에서 이미지를 추출하고, 회화로 출력하는 과정에서 겪은 후회, 고통, 혼란의 과정 자체를 회화 그 자체로 보여주려 하였다. 또한 이때 처음으로 조각 작업을 시도했는데, 철판을 직접 커팅하고, 표면을 연마하고 그것들을 일으켜 직립시키는 조각 작업을 통해 그리기에 대한 고민을 다루었다. 전시를 준비하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지만, 오히려 이때의 과정이 나에게 있어 그림을 그리는 게 어떤 의미인 건지 더 절실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시가 열리는 동안 윤석남, 홍승혜 작가님을 종종 뵙고 선배 여성 작가님들의 이야기를 들었던 일이 지금까지도 큰 힘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아쉽게도, 「뒤집은 채로 감자칩 먹는 여자」는 내 손을 떠났다. 카우프만의 소장품 목록에는 다른 작업을 넣어주시길.

『디어 마이 헤잍-엔젤-갓』 1층 전경, 2021.
©서울특별시미술관협의회

김형진은 워크룸과 워크룸 프레스, 카우프만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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