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묻은 안경(glasses) 그리고 (당신의 낙관과 비관을 가늠하려는 듯) 딱 절반의 물이 채워진 유리잔(glass). 오노 요코의 앨범 『유리의 계절』 커버는 우리에게 이 두 가지 ‘유리’를 보여준다. 그중 하나의 유리는 존 레넌(안경)이고, 다른 하나는 오노 요코(반이 채워진 유리잔)다. 레넌은 죽었고 요코는 낙관과 비관의 경계에 서서 노래한다. “나는 모르겠다(I don’t know why)”고.
둘 중 하나의 유리, 존 레넌의 안경은 일본의 안경 브랜드 하쿠산 메가네(白山眼鏡)의 ‘메이페어(Mayfair)’다. 메이페어는 하쿠산 메가네 창업주의 증손자 마사미 시라야마가 디자인한 셀룰로이드 안경으로 1978년 다섯 가지 컬러로 출시되었다. 존 레넌은 이 가운데 갈색과 노랑, 투명테를 구입했다. 존 레넌이 총격으로 사망한 이후 하쿠산 메가네는 이 제품의 판매를 중단했지만 사후 40주년이 되던 2020년 12월 8일, 한정판으로 메이페어를 재출시했다. (재출시 모델은 셀룰로이드 대신 아세테이트를 사용해 제작되었다.)
하쿠산 메가네의 메이페어.
메이페어를 쓴 존 레넌.
『유리의 계절』이 발매되기 직전, 게펜 레코드사는 요코에게 전화를 걸어 커버 사진을 바꾸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피 묻은 안경이 담긴 앨범은 아무도 사려 하지 않을거라는 이유였다. 오노 요코는 생각했다. ‘도대체 왜지? 사람들은 나를 피를 잔뜩 묻힌 채 거실에 들어서서 남편이 죽었다고 얘기하는 여자로 생각하는 건가. 그는 죽었고 내게 남겨진 것이라곤 고작 이 안경이 전부인데. 이 안경을 보여주는게 미관상 좋지 않다고?’ 요코는 대답했다. “싫어요. 이게 지금의 존입니다.”
RANDOM R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