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와 교실에서 우리는 이렇게 배웠다. 세리프 타입은 전통적이고 인간적이며, 얼마간은 권위적이고 또 그만큼 특별하다고. 반면 산세리프 타입은 현대적이고 기계적이며, 어느 정도는 민주적이며 때문에 보편적이라고. 2010년대 후반, 버버리가 시작하고 발망, 셀린, 생로랑, 발렌시아가 등이 이어받은 산세리프 리브랜딩 유행이 (적어도 당시엔) 기이해 보였던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대중과의 차별화라는 지고의 가치를 버리기로 결정한 것일까. 아니면 더 이상 화려한 로고로 존재감을 과시할 필요도 없을만큼 자신만만해 진 것일까.

그리고 2023년 봄, 버버리는 5년만에 다시 세리프 타입의 로고로 되돌아왔다. 이와 함께 1901년 공모전을 통해 선정된 승마 기사 문장도 복원되었다. (리카르도 티시 자리를 이어 받아 버버리의 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다니엘 리가 보기에 피터 새빌이 디자인한 산세리프 로고엔 브랜드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없다고 느꼈던 것일까. 아니면 어느덧 산세리프로 가득 차 버린 럭셔리 브랜드 로고 생태계에서 탈출하고 싶어서였을까. 생로랑이 카상드르의 로고로 되돌아가고, 버버리가 승마 기사 문장을 복원한 것은 또 다른 보수주의를 알리는 신호탄 같은 것일까. 아니면 그저 전임 디렉터의 흔적이라면 모조리 지워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고약한 신임 디렉터 몇몇의 변덕에 불과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