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파리의 호텔 드루아에서는 1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 당국이 압수한 미술품 경매가 열렸다. 적국인 독일 출신의 화상 다니엘 앙리 칸바일러(Daniel-Henry Kahnweiler)가 지난 10여 년간 파리에서 모은 작품들이었다. 페르낭 레제, 후앙 그리, 조르주 브라크 그리고 파블로 피카소의 작업이 차례로 팔려 나갔고, 그 중엔 피카소가 1910년에 스페인의 휴양지 카다케스에서 그린 분석적 큐비즘 양식의 걸작 「기타 플레이어(Le Guitariste)」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림을 구입한 사람은 프랑스 주식 중개인이자 미술 수집가 앙드레 아메데 니콜라 르페브르(André Amédée Nicolas Lefèvre)였다. 1963년, 그가 사망한 후 「기타 플레이어」는 파리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되었고 현재는 퐁피두 센터에 소장되어 있다.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리플리』의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리플리는 이탈리아 아타라니에 있는 리차드의 저택에 방문한다. 그리고 서재 입구 벽에 걸린 이 작품, 피카소의 「기타 플레이어」을 마주한다. 미술관 유리 너머로만 보던 피카소가 친구 집 벽에 이렇게 떡하니 걸려 있다니. 리플리는 한참을 서서 바라본다. 모든 면이 조각난 기타리스트의 모습에서 리플리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친구이자 사기꾼, 회계사이자 미술 수집가, 프리랜서 편집자이자 부유한 친척의 유산 상속자, 그리고 리차드 그린리프이면서 동시에 피모시 팬쇼인 톰 리플리인 자신의 모습을.